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귀주성 전투 (문단 편집) === 폭풍전야 === 당시 [[귀주성]]에 버티고 있던 이는 서북면병마사 [[박서]]. 그리고 정주 분도장군 [[김경손]], 위주부사 박문창, 삭주 분도장군 김중온, 정주부사 박득분이 이끌던 병력들이 이동해 있었고 많은 수는 아니지만 서북지방 병력이 집결해 총 5,000여명이 있었다. 이들은 모두 패전하였거나 성을 포기하고 합류한 병력으로 보인다. 1231년 9월 3일, 우에르가 이끄는 제2군 1만이 [[귀주성]]에 모습을 드러내자 박서는 김중온에게 동문과 서문을, 김경손에게 남문을 맡기고 자신은 북문을 수비토록 하였고 각 병력 중 정예 별초군 250명을 뽑아 각 성문에 배치시켰다. 김경손이 직접 나서 이런 말을 했다고 《고려사》에 기록되어 있다. >'''"[[명량해전|너희들은 목숨을 돌보지 말고 죽어도 물러나지 않아야 한다.]]'''(爾等不顧身命 死而不退者。)" >---- >《[[고려사]]》 김경손 열전 하지만 [[몽골 제국/군사|몽골군]]의 무자비한 공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고려군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우별초들이 모두 땅에 엎드린 채 명령에 불응해 이들을 성으로 돌려 보냈다. || [[파일:attachment/guijusungdoor1.jpg|width=100%]] || || 귀주성의 남문. 원래 문 자체는 6.25 전쟁 때 파괴되었고, 현재 남아있는 문은 1979년에 복원한 것이다. ||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